번역/소설번역

    청춘이혼 (9)

    청춘이혼 (9)

    같이 있던 친구들에겐 급한일이 생겼다고 말하곤 맥도날드를 뛰쳐나왔다. 몇 번 정도 안부 메일을 주고받은 뒤 처음 있는 토우마와의 대화였다.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때와 마찬가지로 빠르게, 짧은 메일을 주고받는다. 서두르느라 계속해서 오타가 난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어댔다. 여름의 시작, 5분 정도 걸어가면 등에 땀이 날 정도로 더웠다. 땀에 젖은 옷에 신경 쓰면서 도서관 입구에서 토우마 군을 찾는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토우마가 자전거에 기대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토우마 다됐어?" "베타 버전이지만" "베타버전?" "응, 시험 버전 같은 거야, 써봐" 토우마에게 휴대폰을 건네받아 손에 쥔다. 내 것이랑 같은 모양인데, 케이스 없이 사용해선지 조금 낡은 것 같은 휴대폰을 켜고, 작은 아이콘을 발..

    청춘이혼 (8)

    청춘이혼 (8)

    맥도날드의 작은 책상 두 개를 여자 여섯 명이어서 붙여, 라지사이즈 감자튀김 세 개를 나눠 먹는다. 그런 회합이 여고생들 사이에서는 자주 일어나고, 나오지 않는 사람은 반에서의 지위를 위협받는다. ……라는 건 과장이지만 1학기 종업식을 끝내고,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뒤늦게나마 그 틀 안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봄에는 그렇게나 경멸했던 반 친구들이지만, 토우마가 말 한대로, 받아들이고 흘려 넘겼더니 장난은 그녀들이 이야기 나누는 방법의 하나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법중의 하나라는 걸 알았다. 중학교 때보다도 동성 친구들과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까, 이쿠미 휴대폰 있었던가?" "에-뭐야 그거 몰랐어, 번호 알려줘" 나는 그 말을 듣고 허둥대며, 가방 깊숙이 넣어뒀던 휴대폰을 꺼냈다. 익숙해지지..

    청춘이혼 (7)

    청춘이혼 (7)

    다음날 등교 후 나는 노트에 뜯어둔 스케치북을 넣어서 넘겨줬다. 스케치북을 가져와서 당당하게 보여주는 건 뭔가 창피해서 그렇게 숨겨서 보여줬다. 이상하게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지만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 "양?" 언뜻 훑어본 토우마가 안경 안에서 눈썹을 올려 툭 하고 한마디 던졌다. "양(야기)" 나는 얼굴을 쳐다볼 수도 없었다. 눈을 피하고 양손을 주먹 쥐어 무릎 위에 올려놓곤 얼굴 양옆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으로 커튼을 만들며 말했다. "야기 상고니까" 토우마가 그 말을 듣고 웃었다는 걸 분위기로 눈치챘다. 그 분위기를 읽고서 드디어 조금이나마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토우마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센스가 좋네" 어깨 위의 짐이 덜어진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자랑스러움을..

    청춘이혼 (6)

    청춘이혼 (6)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는다고 했던 건 누구였었지?, 어떻게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눈을 돌리고 보지 않는 수 밖에 없다고. 내가 가진 병도 그런 거라고, 종합병원의 의사는 말했다. 여러 가지 다른 병에 대응해 보는 방법은 알려줬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건강해지면 좋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기도해서 병이 낫는다면, 의사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의사놀이를 하는 게 아니지 않으냐고 오래된 집의 문을 열고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했다. 집 자물쇠는 풀려 있었으니까, 오늘은 엄마가 밤에 일하는 날이겠지, 부엌에서 다녀왔니 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평소라면 그렇게 방으로 돌아가겠지만, 나는 교복을 입은 채 부엌 입구에 서서 말했다. "엄마, 휴대전화 가지고 싶어" 나를 돌아본 엄마는 의아하다는 얼굴로 "휴대폰이 왜..

    청춘이혼 (5)

    청춘이혼 (5)

    진정되지 않은 채 방과 후 가 되니, 토우마가 "같이 돌아가자"고 말을 걸어왔다. 그 소리를 들은 주위는 소란스러워 져서 나는 할 말을 찾았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토우마가 "쉿"이라며 검지를 세우는 애교 있는 태도로 그 상황을 비밀스럽게 만들어 주위를 공범으로 만들었다. 토우마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그 뺀질거리는 회피법이, 너무나 능숙했다. "이쿠미씨 버스 타고 가?" 신발장 문을 열면서, 물어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집은 걸어서 가기에는 조금 먼 곳에 있다. "토우마는?" "나는 자전거" "어 비 오는데" "응 그래서 오늘은 걸어왔어." 요, 라며 조그만 목소리로 말한다. 버스정류장을 물어본 토우마가, 거기까지라면 갈 수 있겠네 라고 말했다. 나는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같이 돌아..

    청춘이혼 (4)

    청춘이혼 (4)

    야기 고등학교에서는 부기가 필수과목이어서, 모든 학생이 이수시간을 채워야 하고, 자격을 따야 한다. 나는 지루한 판서내용을 노트에 필기하면서, 잠기운을 떨치는데 몰두하고 있었다. 오후 첫 번째 수업은 졸리고 지루하다 유월 중순 장마철에 들어가 매일같이 비만 내리는 날에는 더 그렇다. 지루할 때 얼굴 왼쪽을 만지는 건 버릇이었다. 눈 아래의 책상을 늘릴 것 같은 기세로 만져가며 오른쪽 손으로는 노트 구석에 낙서하고 있었다. 수업 종료령이 울려 한숨을 쉬려 했더니 교실을 나가기 전 선생님은 "오늘 배운 부분은 내일 쪽지시험 볼 거다" 라며 착잡한 선물을 두고 갔다. "큰일인데" 등 뒤에서 불쑥 소리가 났다. 무심결에 돌아봤더니 토우마가 눈을 비비며 조용히 말한다. "이쿠미씨, 나 잤어." 또? 라는 생각이 ..

    청춘이혼 (3)

    청춘이혼 (3)

    우리가 다니던 학교는 야기 상업고등학교다. 현 내에서도 특징적인 시립고등학교로 1학년 때부터 선택과목이 많아서, 같은 반끼리 떨어져서 듣는 수업이 많았다. 전원이 모이는 건 조례랑 종례 때뿐, 이런 날도 있어서, 제출과제를 선생님께 전달하는 건 당번의 일이다. 당번도 이름순으로 정해서, 사코노 이쿠미와 사코노 토우마는 당연하게도 칠판에 같이 이름이 적혀있었다. 일 학년 4월 끝, 나는 할 수 있는 만큼, 눈앞에 서 있는 토우마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하면서 담담하게 프린트 매수를 셌다. "부부들끼리 데이트 하는 거야?" 프린트 묶음을 들고 있는 나와 토우마에게, 같은 반 여자가 옆을 지나가면서 물어봤다. 장난기 있는 목소리와 함께, 같은 반 친구 몇 명인가가 추종하듯 데이트라는 말을 따라 하고 있다. 이래..

    청춘이혼 (2)

    청춘이혼 (2)

    사코노 토우마는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났는데 그는 입학식 날 내 뒷자리에 앉아있었다. 그건 운명도 뭣도 아니었다. 가나다라마 순으로 배치해둔 책상에서 사코노 이쿠미의 뒷자리가 사코노 토우마였다. 그냥 그런 거였다. 그때 나는 우울한 자기소개를 끝내고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책상의 오래된 자국들을 손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사코노 토우마 입니다" 하지만 등 뒤에서 우물거리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뒤돌아 봤다. 첫인상은 그렇게 임팩트 있지 않았다. 만났을 때부터 약간 부스스한 곱슬머리였고 테가 두꺼운 안경을 끼고 있었다. 마른 체형에 새우등이라 몸은 구부정했다. "뭐야? 사코노 이쿠미랑 같은 성이구나 친척이냐?" 와이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접어 올린 담임이 그렇게 물었다 "……아뇨" 나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