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흘러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 우리는 뒷산에 버려진 개를 몰래 키우듯이 산양을 길러갔다.
시간표 관리기능을 추가한 뒤에 산양을 기를 수 있게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시험용지를 먹여서 점점 겉모습이 변해가도록 만든다.
덤 같은 기능이었지만, 우리는 즐거웠고, 사용자들도 즐거워했던 것 같다.
3학기도 끝나가려고 할 때, 반 분위기가 들떠서 나도 한 편으로 조금 고민하고 있었다. 산양 앱이 표시하는 날은 2월 13일, 무슨 소리냐면 이런 거다
"이쿠미는 남편한테 초콜릿 줄 거야?"
교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과 대형슈퍼의 발렌타인 코너를 돌아보고 있었더니, 한 명이 내게 물어왔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줘야 한다고 생각해?"
라고 반대로 물어봤다. 친구는 놀란 것 같았다.
"주기 싫어?"
"신세 지고 있으니까"
라며 대답했다. 우리는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서로 신세 지고 있다고 라는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하지만이라고 대답했다.
"민폐일지도 모르고"
주고 싶으면 줘, 라며 무책임하게 친구가 말해서 나는 웃으면서, 그래도 부부라고 부르는 건 너희잖아 하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 말을 원망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아니 어떨까, 원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부부라는 별명으로 불리지 않았다면
다른 방식으로 친해졌을 거다. 그게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산양 앱이 만들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부부가 아니었을지도 모르는데, 라며 나는 산처럼 쌓인 초콜릿을 보면서 생각한다.
부부라는 중간과정이 생략된 관계는, 너무나 마음 편했다. 그래서 나는 먼저 발을 내딛지 않고 있다.
하지만 토우마는 모르겠다. 이 관계를 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 나 혼자뿐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짐이라고 여겨지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것을 바람처럼 흘려넘기는 영리하고 상냥한 토우마에게, 짐 같은 여자라고 여겨지고 싶지 않다.
내 왼쪽 뺨은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언제 재발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매일 머리를 묶고 생활한다. 이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초콜릿을 줘야 할까, 주지 말아야 할까
매장에서 눈에 띈 초콜릿을 계산대로 가져갔다.
다음날 가방에 넣고 등교하기는 했지만, 발렌타인이라 붕 떠 있는 분위기는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무서워졌다.
토우마는 언제나처럼 예령이 아슬아슬하게 울리기 전에 들어와서, 흐느적흐느적 책상에 부딪히면서 내 뒷자리에 앉는다.
"좋은 아침"
"좋은아……"
토우마는 언제나 보다 한층 더 무거운 눈꺼풀로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다. 자전거를 타고 왔겠지, 추운 바람을 맞은 뺨은 조금 빨개져 있었다.
"졸려 보이네"
"응 좀"
그리고 바로 책상에 엎드려버려서, 이건 안 되겠네 하고 생각했다.
에둘러 말하는 거절일지도 모른다. 한숨을 쉬고 초콜릿이 들어있는 가방을 책상에 걸었다.
점심시간이 오고 여자들끼리 모여서 초콜릿은 한편에 접어두고 점심을 먹고 있었더니 스마트폰을 쓰고 있던 친구가 "아"라며 말했다.
"있지 앱 새로 나온 거 봐봐"
"산양?"
그런 말은 듣지 못했다. 앱 업그레이드 화면을 눌렀다. <스켸줄 기능에 기념일을 알려주도록 바뀌었습니다."라고 적혀있길래 고개를 기울이며 내려받아 앱을 열었다.
윙하는 진동이 울리고, 화면에 글자가 떴다.
>>>attention! 2/14 오늘은 밸런타인데이 입니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게다가 그 알림은 이단으로 돼 있어서 화면을 터치하니 또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초콜릿 주세요!
이라고 표시됐다. 오늘만 그런 걸까 산양의 눈도, 언제나 실눈이었지만 하트로 바뀌어 있다.
(별수 없네)
나는 웃으면서 별수 없네 하고 생각한다. 나는 동시에 이렇게 상냥한 사람을 잘 모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게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누군가가 이렇게 상냥하게 대해준 적도 없고 부족하지 않게, 상냥함을 받아본 적도 없다고 생각했다.
"토우마"
자리로 돌아가서, 가방 안에서 포장된 초콜릿을 꺼낸다. 내용물은 열어보면 알 테지만, 산양 모양 동물 초콜릿 이였다. 내 마음속에서는 친구라서 주는 것도 좋아해서 주는 것도 아닌 특별한 의미가 담긴 초콜릿이다.
부인이 남편에게
"별 수 없으니까 줄게"
토우마는 자고 있던 걸까, 눈을 문지르더니 내가 주는 초콜릿을 공손하게 두 손으로 건네받았다.
"고맙구먼"
일부러 그런 걸까 저런 식으로 연기하는 것 같은 톤으로 말했다.
나는 웃는다. 친구들도 웃었다. 그때 갑자기, 계속 이대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쭉 함께 있고 싶다.
계절은 1년의 끝자락, 그게 1년 동안 이 사람과 부부로 있었던 내 결론이었다. 나는 나를 위해서 이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기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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