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와 발이 젖은 채 집으로 돌아가니 엄마가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평소 같으면 조급해하면서 서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조용하게 앉아있는 모습에 가슴이 덜컥했고 평소와는 다른 무언가를 느꼈다. 그건 말끔하게 차려입은 외출복이나 평소에는 하지 않는 목걸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뭐야?"
어디까지나 테이블에 앉아있는 것만을 물었더니 엄마는 얼굴을 들고
"앉으렴"
이라고 말했다. 좋지 않은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이상한 예감밖에 들지 않는다.
"아빠랑 얘기가 다 끝났어."
그렇게 말하는 엄마의 얼굴은, 큰일이 끝난 듯이 후련해 보였다.
"정식으로 이혼했어."
내게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나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벌써 오랫동안 아빠와 엄마는 별거 중이었고, 나는 엄마가 기르는 걸로 정해져 있었다.
이혼 협의 문제로 다투고 있단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내부사정은 전혀 몰랐고 모르는 게 행복한 거라고 생각했다.
"수고했어"
할 수 있는 한 다정한 얼굴과 다정한 목소리로 말한다. 축하한다거나 잘됐네 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일단 오랫동안 수고했다고 생각했으니까
"뭔가 해야 할 일 있는 거야? 이혼서류 라거나"
"해야 할 건 딱히 없는데"
엄마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름이 바뀔 거야"
나는 또 한 번 가슴이 덜컥했다. 표정이 굳어가는 게 느껴졌다. 이름이라면 사코노 이쿠미에서 이쿠미가 아니라 사코노라는걸 알 수 있었다.
나와 토우마를 이어준, 단 하나의, 공통점이었다.
(싫어)
말하려 했지만, 목구멍에서 나오지 않는 그 말을 억누르며 왼쪽 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이제는 더는 끌려 올라가지 않는 잔잔해진 뺨에
싫다고 생각했다. 이것만은 빼앗아 가지 않길 바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뭐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 때문에? 그 사람과 부부로 있고 싶으니까
하지만 그걸 엄마한테 설명할 수 있는 걸까, 무슨 소리 하는 거니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니까
내가 갈팡질팡 눈동자를 둘 곳을 찾지 못하니, 편안해 보이는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이렇게 편안해 보이는 얼굴은 오랜만에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는 편해지고 싶은 거라고 생각했다. 편해지고 싶었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엄마에게 이름은, 이제는 헤어진 사람과 이어진 쇠사슬일 뿐이었다.
내 이름도 쇠사슬 이였던걸가.'라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나는 이 쇠사슬에서 그 사람을 해방해줘야 하는 건 아닐까 상냥한 그 사람. 눈매가 나쁘고 새우등에 글씨를 잘 못 쓰는, 그래도 한 가지에 빠져서 심혈을 기울이는 성실한 그 사람을
2년 하고 약간의 중요한 시간을, 나는 빼앗아 버린 건 아닐까
나는 자꾸만 왼쪽 뺨을 찌른다. 토우마의 상냥함이 내 뺨을 녹여, 나를 편하게 만들어 줬다. 그건 확실했다.
(토우마 선배)
그렇게 부르는 달콤한 목소리가 내 안에서 메아리친다. 주름진 치마의 옷자락이 비에 젖어서, 다리에 붙어있다.
이제는 괜찮을 거였다. 이제는, 괜찮을 거였다.
그때 갑자기 떠오른 건 소논문 수업이었다. 나눠진 과제는 부부별성에 관한 것으로 서두에 11월 22일이 좋은 부부의 날, 이라고 적혀있어서,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옆자리 친구가 어깨를 두드려 나는 타이르는 듯 웃음으로 되받아쳤다.
좋은 부부라는 건 뭘까
나는 모른다.
좋은 부부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환상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렇게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될 수 없었다.
되고 싶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비가 창문을 때린다. 아마도 오늘이 지나면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등학생으로서 맞이하는 마지막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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